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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것과 새로움 사이, ‘다시’의 쓸모

지나온 것과 새로움 사이, ‘다시’의 쓸모

Editor | 만두

Intro

9월이다. 여름의 열기는 한풀 꺾였고, 겨울의 냉기는 아직 멀리 있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한여름에는 몇 걸음만 걸어도 지쳤던 길에도 다시 발을 내딛게 된다. 작년 이맘때 걷던 길을 다시 걸으면, 같은 길인데도 어딘가 새로움이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 삶은 좀처럼 같은 길을 다시 걷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계속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도록 요구한다. 문화예술교육 현장도 마찬가지다. 지난해에 없던 기획, 새로운 시도와 형식, 전에 본 적 없는 결과물, 차별성에 대한 요구가 늘 따라붙는다.
그런데 최근 만난 두 문화예술교육에서는 오히려 이미 지나온 것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다시’에는 단순한 되풀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었다.

다시 펼치는 사람들: ‘꾀하당’ 심화과정

7월 21일은 평택문화기획학교 맞춤과정 ‘꾀하당’의 심화과정이 시작하는 첫날이었다. 이날 참여한 기획자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 일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아니었다. 대신 이들은 지난해 꾀하당 기본과정에서 각자가 진행했던 기획을 다시 펼쳤다. 무엇을 깨달았는지, 무엇이 아쉬웠는지, 다시 해볼 수 있다면 무엇을 달리하고 싶은지를 기억에 의지해 떠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글로 정리하고 다른 기획자들과 나누면서 당시에는 미처 보이지 않던 것들을 하나씩 되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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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운동복과 좋은 운동화를 갖췄지만 제대로 운동하지 못한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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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내 기획을 더 깊이 발전시켰다는 것이 정말 의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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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림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함께 무언가를 하는 방법은 찾았지만, 다시 보니 정작 어떤 메시지를 건넬지가 비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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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들의 따뜻한 눈빛과 진솔한 나눔을 통해 내가 오히려 더 큰 위로와 충만함을 얻었다.”
성공이라 판단했던 부분도 시간이 지나 다시 보니 아쉬운 점이 있었고, 반대로 부족했다고 여겼던 부분에서도 다른 의미가 보였다. 이날의 대화는 그중에서도 아쉬움과 한계를 돌아보는 쪽으로 조금 더 기울었다.
“힘들었다.” ”아쉬웠다.” ”내가 왜 했나 싶다.”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다시 해보고 싶다.”
쏟아져 나온 이 울퉁불퉁한 말들과 함께, 과거는 다시 현재형으로 돌아왔다.
돌이켜보면 기본과정에서의 첫 기획이었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을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일정을 맞추고 준비물을 챙기고 계획한 활동을 진행하다 보면, 애초에 왜 이 기획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생각은 뒤로 밀리기 쉽다. 현장 안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은 한 해가 지난 뒤 조금 거리를 두고 보니 그제야 드러났다.
이 지점에서 ‘심화’라는 단어가 새롭게 읽혔다. 보통 심화과정이라 하면 기본과정을 마친 뒤 더 어려운 이론이나 새로운 방법을 배우는 장면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꾀하당의 ‘심화’는 앞서 했던 것을 깨끗이 리셋(reset)하고 새로운 것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길을 다시 밟아보며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확인하는 일로 시작했다.
이 과정의 담임강사를 맡은, 커뮤니티 스튜디오 104의 임재춘 대표는 ‘심화’의 의미를 다시 짚었다. 지난해의 배움이 희미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올해의 배움은 그 희미해진 흔적을 더듬어 다시 떠올리고 넓혀가는 데서 나온다는 설명이었다. 즉, 배움은 기억한 것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잊힌 것을 다시 꺼내보는 과정 속에서도 일어난다. 이어서 임대표는 지난해에는 하나의 점을 찍었다면, 올해 심화과정은 그 점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고, 조금씩 자신의 반경을 넓혀가는 과정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앞으로는 그 원을 넓혀가는 움직임이 기다리고 있다. 꾀하당 기본과정에서는 각 기획자가 자신의 관심과 질문을 따라 하나의 기획을 만들었다면, 심화과정에서는 지난해의 경험을 다시 살핀 뒤 다른 기획자와 팀을 이루어 새로운 기획을 만들어 가게 된다.
첫 시간에 지난 기획을 다시 펼쳐보는 일이 쓸모 있는 이유다. 그저 개인적인 반성에만 머무르는 시간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잘했는지, 어느 부분이 의미있었는지, 어디에서 흔들렸는지, 여전히 남은 질문은 무엇인지’를 알아가다 보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나는 무엇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함께 앞으로 무엇을 기획할 것인가’로 옮겨간다. 풍년이든 흉작이든, 지난해의 수확이 다시 올해의 씨앗이 되는 셈이다.
한 번 해보고 나서야 물을 수 있는 질문이 있다. 꾀하당 심화과정의 ‘심화’는 바로 그 질문들을 가지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데서 시작되고 있었다.

다시 읽는 사람들: ‘나’ 혼시, 극장이 되다’

‘1인칭 시(詩)점: 나’ 혼시, 극장이 되다’ 프로그램의 시작은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택시문화재단은 「한 사람이 온다」 사업을 통해 ‘혼자 있는 시간’을 고립이나 결핍이 아닌, 한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자라나는 시간으로 바라보아 왔다. 이를 바탕으로 2024년에는 시민들의 혼자 있는 시간을 영화로, 이번 2026년에는 그림으로 그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25년에는 시가 매개가 되었다. 시민들이 저마다의 혼자 있는 시간을 표현한 시들은 「나 혼자 있는 시간은 시가 된다」라는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일명 ‘나’ 혼시 시집’이다.
그리고 올해, 이 시집이 다시 등장했다. 그 배경에는 ‘1인칭 프로젝트 연구과정’이 있다. 2024~2025년 평택시문화재단의 교육과정을 수료한 기획자들이 다시 모여, 1인가구를 위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연구하고 개발하는 과정이다. 이 가운데 한 팀이 나’ 혼시 시집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청년 1인가구 참여자들이 이 시집을 다시 읽고, 낭독극으로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이다. 총 4회차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의 첫 모임이 지난 8월 19일에 평택청년지원센터에서 열렸다.
첫 시간에는 나’ 혼시 시집에 실린 많은 작품 가운데 청년들이 쓴 시를 다시 읽었다. 참여자들은 공간 이곳저곳 붙어있는 시들을 천천히 살펴보며, 자신에게 와닿는 문구나 표현을 포스트잇에 옮겨 적었다. 분명 다른 사람이 쓴 시였지만, 읽는 사이 각자의 기억이 끼어들었다. 한 참여자는 ‘째깍째깍’이라는 표현에서 혼자 사는 집에서의 정적, 그리고 그 정적을 깨며 오히려 위로가 됐던 시계 소리를 떠올렸다. 다른 참여자는 ‘꿉꿉’이라는 단어에서 자취방의 눅눅한 화장실을 기억해냈다. ‘겨울잠’, ‘쇠맛 나는 수돗물’, ‘암막커튼’, ‘어른이 된다는 것’, ‘방안의 나’와 같은 말들도 저마다의 기억과 장면을 불러냈다. 다른 사람의 시를 읽으며, 어느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각자가 골라낸 문구들은 다시 한 곳에 모였다. 참여자들은 두 조로 나뉘어 자신이 쓴 포스트잇을 꺼내놓고, 문구 사이사이에 새로운 말을 보태며 한 편의 시로 엮어갔다. 서로 다른 시에서 건너온 단어들이 이어져 두 편의 합동시로 재구성되었다. 한 사람의 시를 다시 읽는 데서 시작해,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새로운 시가 재탄생한 것이다. 이 두 편의 시는 앞으로 각각 낭독극 대본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다시’에는 묘한 역설이 있다. 같은 곳으로 돌아가지만, 같은 곳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지난해의 문장들은 올해 누군가의 기억을 건드렸고, 그 기억은 다시 다른 문장이 되었다. 그렇게 다시 걷는 길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이 되었다.

반복은 같은 것을 낳지 않는다

지나간 계절을 다시 맞고, 걸었던 길을 다시 걷는 것. 우리는 흔히 이러한 반복을 같은 것을 되풀이하는 지루한 일로 여긴다. 그러나 앞의 두 현장을 보면 ‘다시’가 곧 ‘똑같이’를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반복’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동일성만을 고스란히 베끼는 ‘피상적 반복’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면에서 일어나는 ‘심층적 반복’이다. 그는 후자를 중요하게 보았다. 같아 보여도 반복은 매번 다른 조건과 관계 속에서 일어나고, 그때마다 차이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같은 악보라 해도 어제와 오늘의 연주가 같지 않고, 같은 계절을 걸어도 지난해와 올해의 걸음이 같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즉, 반복은 동일한 것의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다시 행하는 과정에서 매번 차이와 특수함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과정이다.
두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오가던 사이 그 어디쯤, 경기 예술인의 집에서 열린 2026 경기문화예술교육 매개자 연수 <성큼>의 한 과정이었던 「문화예술교육, 나도 해볼 수 있을까?」에 참여했다.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임재춘, 최선영 두 기획자의 이야기는 지나온 것을 다시 보는 일이 문화예술교육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생각하게 했다. 들뢰즈의 개념을 현장의 언어로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예술이 ‘멈출 줄 알고 되돌아갈 줄 아는 미덕’을 지녔다고 말하며, 예술교육가에게 필요한 태도는 자신의 모름을 인정하고 궁금해하며 계속해서 탐색하는 것이라 설명한 임재춘 대표. 자신의 지난 경험을 계속해서 언어화하면서, 나의 기획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일을 강조한 최선영 기획자. 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다시’와 ‘새로움’은 서로 반대편에 있지 않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꾀하당 심화과정’ 그리고 ‘나’ 혼시, 극장이 되다’, 이 두 현장의 ‘다시’는 과거를 그저 재현하는 일이 아니었다. 지나온 것을 다시 만나는 순간, 이전에는 없던 질문과 해석이 더해지며 미세한 차이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 차이는 다음을 향하고 있었다.

Outro

어반스케치를 하다보면 같은 장소를 다시 찾을 때가 있다. 장소는 그대로인데, 갈 때마다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온다.
같은 계절을 다시 걷는다고 해서 꼭 같은 걸음은 아니다. 지난해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 오늘은 보이고, 그때는 무심히 지나친 풍경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시간이 흐른 만큼 나 역시 달라져 있다. 그러니 같은 길이 결코 같은 길일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새로움일까, 아니면 이미 지나온 것들을 충분히 다시 만날 시간일까. 매년 새로운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지난 것을 다시 만날 겨를도 없이 서둘러 다음으로 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빠르게 만들고 빠르게 잊어버리는 일 사이에서, 천천히 다시 걷는 시간을 남겨두는 것. ‘다시’는 느려보이지만 같은 것을 낳지 않는다. 다시 걸을수록 달라지고, 그 차이는 비로소 새로운 다음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곧 ‘다시’의 쓸모일 것이다.
두 현장은 이제 다음 걸음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이 걷는 길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다시’가 새로운 행로를 열어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다시 걷는 계절, 9월. 새로움을 찾아 나서는 설렘도 좋지만, 이미 한 번 지나온 길을 다시 걸어봐도 좋겠다. 같은 계절을 걷더라도, 같은 걸음은 없으므로.
평면도스튜디오 에디터 만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