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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의 손이 한 팀의 맛이 되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이 한 팀의 맛이 되기까지

Editor | 조약돌

여러 사람의 손이 한 팀의 맛이 되기까지

“손맛은 음식에 사랑과 감사의 의미를 넣어 상대에게 표현하는 맛이에요.” - 손맛팀 인터뷰 중
테이블 위에는 손맛이라고 적힌 앞치마가 놓여 있었다. 그 이름을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세 사람은 서로 다른 말을 꺼냈다. 누군가는 손맛을 사랑과 감사가 음식에 스며든 상태라고 했고, 누군가는 ‘누가 있으면 뭘 만들어 먹이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집에서 직접 만든 음식에는 사 온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맛이 난다고 했다. 뜻은 달랐지만 방향은 같았다. 손맛은 잘 만든 음식의 기술보다 먼저,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마음을 한 상으로 차린 사람들이 있다. 기획자 조아라, 현종숙, 김진일, 진귀녀. 이들이 2026 노블 프로젝트 ‘선배시민과 예술방학’의 시니어청춘레시피_손맛, ‘엄마의 여름 밥상’을 만든 시간은 한 해에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2025년에는 어르신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밀키트와 다감각 아카이빙 작품에 담고, 토크콘서트에서 시민들과 나눴다. 자신의 삶과 손맛을 이야기하던 경험은 2026년, 어르신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그램을 함께 만드는 새로운 기획으로 확장되었다. 이들의 진짜 성과는 연잎빙수 한 그릇이나 행사 하루에만 있지 않았다. 시간과 경험을 쌓으며 참여자에서 공동 창작자로, 다시 다음 장면을 제안하는 기획자로 성장해온 과정에 있었다.

삶의 이야기를 담던 손에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손으로

2025년 손맛팀은 어르신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음식으로 풀어낸 밀키트를 만들었다. 그 기억은 맛과 향, 손의 감각을 살린 다감각 아카이빙 작품으로도 이어졌고, 토크콘서트에서는 완성된 결과물과 그 안의 삶을 시민들과 마주 나눴다. 어르신들은 누군가가 마련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무엇을 기억하고 어떤 방식으로 들려줄지 함께 정했다. 자신의 삶이 문화예술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경험이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경험은 2026년 ‘엄마의 여름 밥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제 어르신들은 자신의 삶과 손맛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넘어, 어떤 소재로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함께 만들지 아이디어를 내는 기획자가 되었다. 처음부터 모두가 자신을 기획자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요리 선생님에게 음식을 배우는 수업’인 줄 알았다고 웃었고, 누군가는 음식 솜씨가 부족해 잘할 수 있을지 망설였다. 그러나 손맛팀은 없는 솜씨를 가르치는 자리가 아니라, 이미 각자에게 있는 감각과 경험을 꺼내 서로의 기획으로 연결하는 자리였다.
김진일 기획자는 자신을 ‘같이 어우러지면 잘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내가 못하면 저쪽에서 하고, 저쪽이 못하면 내가 하고, 서로서로 도우니까 참 잘 만났다’는 말에는 손맛팀의 운영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역할은 직함대로 고정되지 않았다.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 정리하는 사람,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 말없이 챙기는 사람이 상황마다 앞으로 나왔다가 다시 물러났다. 조아라 기획자는 큰 글씨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자료를 크게 뽑아 주고, 해보지 않은 일 앞에 선 사람에게는 할 수 있는 크기의 몫을 건넸다. 기획은 누군가를 끌고 가는 지시보다, 각자의 속도와 강점을 알아보고 연결하는 일에 가까웠다.
진귀녀 기획자는 진일과 종숙이 살아온 시간을 ‘내가 접하지 못한 최고의 교육’이라고 했다. 정성을 들여 음식을 만들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 한입 권하고, 힘든 순간에도 맡은 일을 끝내는 모습을 곁에서 보며 ‘나도 누군가에게 연탄불 같은 포근함을 주는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선배시민이라는 말은 이 팀에서 나이의 순서가 아니라 경험이 오가는 방식이 되었다.

눈빛만 봐도 아는 팀

“작년에 만나 잘 화합했으니까 지금은 눈빛만 봐도 다 알아요.” - 손맛팀 인터뷰 중
2년째 함께한 팀의 변화를 묻자 답은 짧았다. ‘지금은 눈빛만 봐도 다 알아요.’ 이 말이 추상적인 자랑이 아니라는 것은 본행사를 앞둔 한 장면에서 드러났다. 행사 일주일 전, 한 사람이 크게 다쳐 수술을 받게 되었다. 당연히 쉬어야 한다고들 생각했지만 당사자는 먼저 ‘그럼 어떡하지? 그때까지 나을 것 같긴 한데’라며 맡은 일을 걱정했다. 동시에 작은 글씨를 잘 보지 못하는 다른 동료는 혹시 모를 빈자리를 대신하려고 창작 동화 낭독 파트를 외우기 시작했다. 누가 시킨 일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빈자리가 보이자 다른 사람이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몸을 기울였다.
결국 다친 동료도 현장에 왔다. 팀은 그 모습을 책임감이라는 말로만 설명하지 않았다. 고맙고 미안하고 존경스러운 마음을 서로 앞에서 꺼냈다. 그래서 이 팀의 ‘눈빛’은 오래 만나 생긴 편안함만을 뜻하지 않는다. 누가 어려운지 알아차리고, 누가 말하지 않은 몫까지 보고, 필요하면 서로의 자리를 메우는 감각이다. 여러 사람이 하나의 팀이 되는 순간은 거창한 합의문보다 이런 작은 이동 속에서 만들어졌다.

연잎 한 장이 그릇이 되기까지

2025년에 각자의 삶을 밀키트와 작품으로 풀어냈던 손맛팀은 2026년, 서로의 생각을 모아 하나의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중심 소재는 연잎이었다. 사찰음식을 배운 경험과 연잎에 관한 생활 지혜가 회의에 올라왔고, 연잎은 생명을 품고 보호하는 상징으로 읽혔다. 그 상징은 여름과 어린이를 만나 ‘연잎빙수’가 되었고, 세대가 한 식탁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예술 체험으로 발전했다.
창작 동화 ‘연잎빙수전’도 한 사람의 작업이 아니었다. 세 분의 어머님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를 함께 만들고, 동화의 장면을 나누어 직접 그림을 그렸다. 각자의 기억과 상상이 한 권의 동화 안에서 연결된 공동 창작이었다. 동화 속 연잎은 넓게 몸을 펼치며 ‘내가 그릇이 되어줄게’라고 말한다. 그 안에 여러 재료가 모여 한 그릇의 빙수가 되듯, 현장에서는 서로 다른 세대와 마음이 한 식탁에 모였다.
양육자들은 어머님들이 직접 준비한 시원한 보리차 한 잔과 연잎 푸드아트를 사이에 두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아이들은 ‘연잎빙수 상점’에서 자신이 원하는 빙수 토핑을 직접 골랐다. 손맛팀 어머님들은 아이들이 고른 토핑을 생연잎에 정성스럽게 담아 건넸다. 마지막에는 가족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 각자 고른 재료로 연잎빙수를 함께 만들어 먹으며 서로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엄마의 여름 밥상’은 단순히 음식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연잎이라는 하나의 소재를 통해 어르신과 양육자, 아이가 만나 서로가 서로의 그릇이 되어보는 예술 체험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어머님들은 직접 만든 동화책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고, 연잎 이야기를 더 깊게 확장해보고 싶다는 의견을 나눴다. 그러나 그 말은 행사의 부족함을 확인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다음에는 이렇게 해보고 싶다’, ‘연잎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어보고 싶다’, ‘손맛팀만의 이야기를 음식뿐 아니라 다양한 기획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제안이 이어졌다. 2025년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던 참여자는 2026년 공동 창작자가 되었고, 이제는 스스로 다음 프로그램을 상상하는 기획자로 성장하고 있었다.

손맛팀이 바꾼 아침

김진일 기획자의 변화는 손맛팀보다 먼저 시작되었다. 그는 2023년부터 2024년까지 경로당에서 진행한 ‘어르신놀이터 시니어청춘레시피’에 참여하며 지역의 문화예술 활동을 처음 만났다. 2025년 누군가가 만든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그는 손맛팀의 일원이 되면서 활동의 폭을 넓혔다.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꺼내고, 동료들과 아이디어를 나누며 기획 과정에 직접 들어섰다. 그 역할은 2026년 ‘엄마의 여름 밥상’까지 이어졌다. 한 프로그램의 참여자였던 어르신이 해마다 자신의 몫을 넓혀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함께 만드는 기획자로 성장한 것이다.
서울에서 평택으로 이사 온 뒤 오랫동안 낯선 동네에 홀로 떨어진 기분이었다는 그의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는 아는 사람을 만나려면 서정리역이나 지제역에서 전철을 타고 서울로 갔지만, 이제는 지역에서 또래 친구와 동생을 만난다. 작은 글씨를 보기 어려운 순간에는 동료들이 자연스럽게 곁을 채웠다. ‘고여 있는 물 같던’ 일상 밖으로 나와 활동하는 일이 좋았고, 무엇보다 ‘아침이 즐거워졌다’고 했다.
처음에는 긴장되고 솜씨도 없다며 번번이 ‘저는 빼주세요’라고 했던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팀은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음 해에도 다시 불렀고, 결국 그는 ‘여기까지 왔는데 재미있다’고 말했다. 솜씨가 있어야 자리가 생긴 것이 아니라, 자리가 있었기에 솜씨와 관계가 자랐다. 그래서 손맛팀의 식탁은 음식을 나누는 곳인 동시에 사회적 역할을 되찾는 자리였다.
“오늘 하루 의미 있게, 여러 사람 웃기고 나도 웃고, 사회에 아주 작은 불씨지만 따뜻하게 하자.” - 진귀녀
진귀녀 기획자는 손맛팀 이후 삶의 의미가 한 층 더 높아졌다고 했다. 노인에게는 따뜻한 이정표가 되고, 아이에게는 반듯한 길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여기서 선배시민은 도움을 받는 노년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오래 살아 쌓은 경험으로 다음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지역의 작은 문제에 자신의 손을 내미는 시민이다. 누군가를 먹이고 싶은 마음, 큰 글씨를 챙겨주는 배려, 빈 낭독 파트를 대신 외우는 책임감은 그렇게 지역을 데우는 작은 불씨가 된다.

다음 식탁에서 건넬 말

손맛팀은 본행사에서 젊은 양육자들과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그 과정에서 팀원들은 의외로 많은 엄마의 마음이 말라 있고, 고립과 외로움 속에서 사람과 만나는 일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다음에는 손맛팀이 더 단단한 구심점이 되어 양육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누구 엄마답게, 누구 아내답게’라는 틀에서 잠시 벗어나 ‘나답게 살자’고. 오늘 하루만큼은 가볍고 지혜롭게 살아보자고.
이 바람은 손맛팀이 2025년부터 쌓아온 시간과 겹친다. 처음에는 자신의 삶과 손맛을 밀키트와 다감각 아카이빙 작품에 담아 시민과 나누었다. 이듬해에는 동화를 공동 창작하고 세대가 만나는 식탁을 직접 설계했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다시 다음 기획을 상상하고 제안하기 시작했다. 김진일 기획자의 경우 2023년 참여자로 출발한 시간까지 더해진다. 일단 나와 앉고, 말하고, 만들고, 서로의 손을 빌리는 동안 참여자는 공동 창작자가 되고 기획자가 되었다. 다음 기수에게 들려줄 말을 묻자 세 사람의 대답은 거의 동시에 나왔다.
“나와라. 일단 나오면 뭐든 된다.” - 손맛팀이 다음 선배시민에게
여러 사람을 하나의 팀으로 만든 것은 완벽한 역할표도, 뛰어난 한 사람의 솜씨도 아니었다. 내 것을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은 마음, 받은 것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는 움직임, 그리고 한 사람의 빈자리를 나머지가 조금씩 메우는 습관이었다. 연잎 한 장이 여러 재료를 품어 한 그릇이 되듯, 손맛팀은 서로 다른 삶을 넓게 받아 안았다. 2025년의 경험은 2026년의 새로운 기획이 되었고, 참여자는 공동 창작자를 거쳐 다음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기획자가 되었다. 그 안에서 여러 사람의 손은 비로소 한 팀의 맛이 되었다.
평면도스튜디오 에디터 조약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