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사업이 남긴 다음 장면
Editor | 그담
사업은 끝났지만, 그곳에서 시작된 사람과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문화예술 사업은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종료된다. 그러나 그 안에서 얻은 경험과 관계까지 함께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평택시문화재단 사업에 참여한 오복근 어르신은 올해 첫 시집을 펴냈다. 기획자 전문과정에서 우수기획으로 선정된 이서혜 기획자는 당시의 구상을 경기문화재단 사업으로 확장했다. 7월에 찾은 두 현장은 문화예술 사업에서 시작된 작은 동기와 질문이 이후 한 사람의 창작과 새로운 지역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한 권의 시집이 되기까지
7월 10일, 원평동 와일드그라스 2층 한편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오복근 작가의 첫 시집 《똑똑, 봄은 다시 온다》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마치 작은 잔치에 온 듯 따스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공간을 채웠다. 이날은 뒤늦게 시작한 배움과 삶의 이야기가 여러 사람의 도움을 거쳐 한 권의 시집으로 완성된 날이었다.
오복근 작가는 1942년 공주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결혼해 세 남매를 두었지만, 서른여섯 살에 홀로 자녀들을 키웠다. 가족의 생계를 돌보느라 자신의 배움은 오랫동안 뒤로 미뤄야 했다. 배움의 기회는 일흔이 넘어서 찾아왔다. 신림동에 살던 어느 날,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을 통해 늦은 나이에도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튿날 새벽 곧바로 길을 나선 작가는 73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새벽 4시경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다니며 4년 동안 공부했고, 이후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쳤다.
서울에서 살다가 평택으로 이주한 뒤에는 평택시문화재단의 평택 사람학교 ‘한 사람이 온다’에 참여했다. 2024년 진행된 이 사업은 평택 1인 가구의 삶과 목소리를 문화예술로 기록하고,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그 일환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한 사람이 온다’는 평택에 거주하는 청년·장년·노년 1인 가구 세 사람의 삶을 담은 옴니버스 작품이다. 김기성 감독이 연출하고 유희선, 박해길, 오복근 작가가 출연했고 평택에 있는 문화공간과 기관에서 상영되어 에디터도 감상한 적이 있다. 작가는 노년 1인 가구 당사자로서 자신의 삶을 카메라 앞에 꺼내놓았는데, 영화 출연은 그녀가 지나온 시간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이어 ‘나혼시’ 활동에 참여하며 일상의 생각과 감정을 시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시집 출간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한 편씩 글을 쓰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서 시 쓰기의 즐거움을 발견했고, 그 경험이 꾸준한 창작으로 이어졌다.
한 권의 책을 만든 사람들
시집이 나오기까지는 여러 사람의 도움이 있었다. 최미아 복지사는 오복근 작가의 글을 발견하고 계속 시를 쓸 수 있도록 곁에서 격려했다. 기획자 신은주 선생님은 작가가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박경순 선생님은 원고를 다듬고 실제 출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손으로 쓴 원고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고, 교정된 내용을 다시 전달하는 과정에도 주변 사람들의 손길이 필요했다. 한 편의 시가 완성될 때마다 누군가의 관심과 수고가 더해졌다.
그렇게 모인 글은 마침내 《똑똑, 봄은 다시 온다》라는 제목의 시집이 됐다. 시집의 ‘시인의 말’에는 배움을 시작한 순간부터 시를 만나기까지의 시간이 담겨 있다.
그렇게 4년을 발걸음도 가볍게 다녔다. 그 후 중·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치고 나니, 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신은주 선생님은 오복근 작가의 꿈을 응원하며, 어르신을 복지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한 사람의 예술가이자 창작자로 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르신들이 자신의 창작 욕구와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도 함께 이야기했다. 출간회에는 작가가 시인이 되기까지 곁을 지켜준 복지사와 예술교육가, 시인, 영화감독이 한자리에 모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건넨 관심과 응원이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모두가 진심으로 시인의 첫 출간을 축하했던 따스한 날, 벌써 오복근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을 기다려본다.
기획학교에서 시작된 질문, ‘로컬로그’로 확장되다
7월 16일 저녁, 이서혜 기획자가 진행하는 ‘로컬로그’의 마지막 현장 회차가 배다리공원에서 열렸다. 이날은 김만제 평택자연연구소 소장의 특강에 이어 어둠이 내린 공원을 걸으며 도시의 야간 생태를 관찰하는 탐방이 진행됐다.로컬로그 역시 지난해 평택시문화재단 사업에서 출발했다. 이서혜 기획자는 기획자 전문과정에서 평택이라는 도시와 그곳에 정착한 사람들의 관계를 고민했다. 당시 제안한 주제가 ‘다음엔 당신의 길’이 우수 기획으로 선정됐고, 올해는 이를 경기문화재단 사업으로 확장했다. 지난해의 기획이 평택을 알아가고 도시의 길을 자신의 생활공간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주목했다면, 올해의 로컬로그는 시민과 전문가가 직접 지역을 조사하고 기록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단순히 설명을 들으며 걷는 탐방을 넘어 사진과 글, 구술과 현장 조사를 통해 평택의 공간과 사람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로 발전한 것이다. 탐사대는 원평동의 오래된 골목과 송탄·안정리의 한미 공존 문화를 거쳐 마지막으로 배다리공원의 야간 생태를 살폈다. 원평동에서는 사라져가는 구도심의 기억을, 송탄과 안정리에서는 70여 년 동안 이어진 한미 공존의 흔적을, 배다리공원에서는 신도시와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기록했다.
강의실에서 다시 만난 은사님
이날 강의를 이끈 김만제 소장은 나의 중학교 은사님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 내내 자원해서 교문 앞에 서서 학생들을 반기고, 학교 뒤편에 작은 생태교육장과 동물원을 가꾸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강의실에서 다시 만난 선생님의 눈에는 그때와 다르지 않은 열정이 담겨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만남에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도 모르게 반가움과 놀라움이 앞섰다. 김만제 소장은 배다리공원이 도심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중요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참가자들은 생물을 발견한 곳이 땅인지, 나무줄기인지, 나뭇잎인지 구분하고 생물의 이름과 행동, 발견 빈도를 기록하는 방법을 배웠다. 휴대전화와 조명을 활용해 야간 생태 사진을 촬영하는 방법도 함께 익혔다. 특강에서는 집게벌레와 공벌레, 쥐며느리처럼 땅에서 만날 수 있는 생물부터 깔때기거미, 대벌레, 울도하늘소, 톱사슴벌레, 맹꽁이와 금개구리까지 배다리공원에서 관찰할 수 있는 다양한 생물이 소개됐다. 특히 평택의 평야와 하천, 습지는 맹꽁이와 금개구리 같은 양서류가 살아가는 데 중요한 환경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어둠이 내리자 보이기 시작한 것들
특강을 마친 참가자들은 조명과 휴대전화를 들고 공원으로 나섰다. 낮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나뭇잎과 나무껍질, 축축한 땅을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밤에 진행하는 생태 탐방이라니, 마치 소년 탐사대가 된 것 같은 호기심과 긴장감에 마음이 설렜다. 평소 벌레라면 치를 떨던 도시인들이 손전등을 들고 모기와 씨름하면서도 곤충과 개구리를 발견할 때마다 환호했다. 어두운 공원 곳곳에서 작은 불빛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고, 탐사가 끝날 때까지 모두 덥고 습한 밤공기조차 잊고 있었다.
김만제 소장은 도시의 생태를 살펴볼 때 무엇을 새롭게 발견했는가보다 누가 아직 남아 있는가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에게는 정리되지 않은 공간처럼 보이는 풀숲과 고사목도 작은 생물에게는 먹이와 은신처를 제공하는 삶의 터전이다. 이날 탐방은 무엇인가를 많이 찾아내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 작은 움직임을 기다리고 익숙한 공원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늘 걷던 배다리공원은 어둠이 내리자 수많은 생명이 살아가는 새로운 장소로 모습을 드러냈다.
문화예술 사업이 남긴 다음 장면
오복근 선생님의 시집과 이서혜 기획자의 로컬로그는 서로 다른 결과물이다. 하나는 개인의 삶에서 길어 올린 시를 담은 책이고, 다른 하나는 도시의 공간과 생태를 시민들과 함께 조사하는 지역 기록 프로젝트다. 그러나 두 이야기의 출발점에는 지난해 평택시문화재단 사업이 있다.
오복근 선생님은 영화 출연과 ‘나혼시’를 계기로 시를 쓸 동기를 얻었고, 여러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가며 첫 시집을 출간했다. 이서혜 기획자는 전문과정에서 우수기획으로 선정된 주제를 경기문화재단 사업으로 확장해 더 깊은 지역 조사와 기록을 시작했다. 사업의 성과는 참여 인원이나 운영 횟수, 결과물의 수량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그 시간이 한 사람에게 어떤 동기를 남겼는지, 사업을 통해 형성된 관계가 이후에도 이어졌는지, 처음 품었던 질문이 다음 활동으로 확장됐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문화예술 사업은 끝났지만 오복근 선생님은 계속 시를 쓰고, 이서혜 기획자는 평택의 다음 기록을 이어간다. 지난해 뿌려진 작은 씨앗은 올해 한 권의 시집과 새로운 지역 프로젝트로 자라났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하나의 사업이 끝난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또 다른 성과가 있음을 보여준다.
평면도스튜디오 에디터 그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