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
Editor | 그담
일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전시로 연결한 시민참여 미술교육 프로젝트 '오!전시'
흔히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작품을 만든다는 것, 그리고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이 걸린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설렘과 부담을 동시에 안겨주는 일이다. 우리는 예술작품이 꼭 캔버스 위의 그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일상의 사물과 경험이 어떻게 예술이 되고, 전시라는 형태로 이어지는지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은 많지 않다. 어쩌면 예술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누군가의 하루를 담은 기록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 속에 이미 존재한다. 다만 그것을 예술이라고 부르지 않을 뿐이다.
오!전시의 공고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궁금했다. 전시장 안에서 시민들이 작품을 만든다. 일상을 관찰하고 사물을 기록한다. 익숙한 예술교육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전시장을 찾았다. 그곳에는 예상보다 훨씬 다양한 사람들과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들이 모여 있었다.
전시장이 작업실이 된 일주일
오!전시는 4월 참여자 모집을 시작으로, 시민들이 자신의 일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과정을 거쳐 5월 전시로 이어진 시민참여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다. 결과물을 보여주는 전시라기보다 전시가 만들어지는 시간을 시민들과 함께 공개하는 프로젝트에 가까웠다. 참여자들은 전시장 안에 자신만의 작업 공간을 만들고 며칠 동안 출퇴근하듯 드나들며 작품을 완성했다. 작품이 벽에 걸리기 전에 고민과 실패, 수정과 대화가 먼저 존재했다. 전시장 한편에서는 초등학생이 돌을 관찰하며 노트에 기록을 남겼고, 다른 공간에서는 가족이 함께 주워온 물건들을 이어 붙이며 새로운 형태를 만들고 있었다. 누군가는 의자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꽃을 통해 새로운 삶의 시간을 표현했다. 관람객들은 완성된 작품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 지켜봤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오갔다. 왜 돌을 선택했는지, 왜 칠판을 가져왔으며, 왜 하필 이 물건이었을까
그 질문은 곧 참여자들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시민들이 전시장의 주인이 되는 순간
참여자 중 평택에서 문화예술 활동과 시민 프로젝트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열지 마시오’ 철가방의 주인 여문환 선생님을 만났다. 이번 프로그램을 바라본 그의 시선은 작품보다 사람에게 머물러 있었다.
여문환 작가는 오!전시의 가장 큰 특징으로 전시장 안에서 시민들이 직접 작업하는 풍경을 꼽았다. 보통 전시장은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이다. 작가들은 작업실에서 작업을 마친 뒤 결과물을 전시장으로 옮긴다. 하지만 오!전시에서는 전시장 자체가 작업실이 되었다.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시민들이 자신의 자리를 정하고 며칠 동안 작품을 완성해 나갔다.
전시장 바닥에 앉아 작업하는 아이들과 옆에서 지켜보다 함께 참여하게 된 부모들, 퇴근 후 전시장을 찾는 직장인들까지. 그 풍경은 일반적인 전시장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생애 첫 전시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이었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전문 예술가가 아니었다. 작품을 만들어 본 경험도, 전시를 해본 경험도 없는 참여자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무언가를 시작했고 끝까지 완성했으며 자신의 결과물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작품의 수준보다 중요한 것은 시작과 마무리를 경험하는 일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고 타인과 나누는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새로운 취미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치유의 시간이 되며, 어떤 사람에게는 현대 예술을 이해하는 첫 경험이 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예술을 어렵게 느끼던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다.
참여자들은 서울의 전시를 함께 관람하고 큐레이터와 작가의 설명을 들으며 현대미술을 만났다. 낯설게만 느껴졌던 예술이 조금은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여문환 작가는 어린 시절의 예술 경험을 중요하게 바라본다. 지금은 그저 재미있는 놀이처럼 기억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경험은 언젠가 전시장을 찾아 작품을 바라보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감수성으로 남는다.
그는 이를 문화적 백신에 비유했다.
어린 시절 한 번의 예술 경험이 훗날 예술을 즐길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프로그램이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시민이 예술을 소비하는 사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고 참여하는 사람이 될 때 도시의 문화도 함께 성장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문화의 주인은 전문가나 기관이 아니라 시민이다. ‘오!전시’는 그 가능성을 보여준 작은 실험이었다. 여문환 작가는 동일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의 칠판 작업을 추천 작품으로 꼽았다.
반복에서 일상으로, 학생들과 함께 이어진 전시
올해 ‘오!전시’에는 전시장이 위치한 남부문예회관에서 가까운 동일공업고등학교 학생들도 참여했다. 사실 학교와 학생들이 참여했다는 소식에 깜짝놀랐다. 에디터 역시 오랜 시간 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쳤는데, 학생들을 데리고 교실을 벗어나 전시를 준비하고, 외부 기관과 협력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설득과 교사의 열정과 준비를 필요로 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프로그램에 학생들과 함께 참여한 동일공업고등학교 이효석 미술선생님을 주말에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선생님은 오래전부터 학생들이 교실 밖에서 작품을 발표하는 경험을 해보기를 바랐다. 학교 복도나 학예회에 머무는 전시가 아니라 시민들이 찾는 실제 전시장 안에서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는 경험 말이다. 사실 학생들과의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2025년 ‘오!반복’ 프로젝트와 안정리예술인광장에서도 학생들과 함께 전시에 참여했다.
2025 안정리예술인광장 전시
2025 안정리예술인광장 전시
‘오!반복’ 당시 참여 학생은 ‘반복’이라는 주제를 풍선을 활용해 풀어냈다. 남부문예회관과 학교를 오가는 길을 반복하며 매일 풍선을 불었고, 학급 친구들도 함께 작업에 참여했다.
작년이 반복되는 행동과 시간에 주목했다면 올해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일상은 무엇일까. 학생들은 그 답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찾았다. 바로 칠판이었다. 매일 바라보는 칠판. 수업을 듣고, 시험을 준비하고, 친구들과 흔적을 남기는 공간. 학생들은 칠판을 단순한 학습 도구가 아니라 시간이 쌓이는 장소로 바라봤다. 수업 중 적힌 문장, 시험을 준비하며 남긴 필기, 친구들과의 장난스러운 낙서, 지워진 흔적까지 모두 하나의 기록이었다. 학생들은 칠판을 전시장으로 옮겨왔다.
시험지와 필기 노트, 영수증, 햄버거 포장지 같은 생활 속 물건들도 작품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현대미술이라는 말이 낯설었지만 작업이 진행될수록 학생들은 자유롭게 재료를 다루기 시작했다.
주말 근무를 마친 뒤에도 학생들과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기꺼이 들려준 이효석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인터뷰 내내 작품이나 전시보다 학생들의 경험을 먼저 이야기하는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선생님은 올해도 월곡동에 위치한 휘겔리움에서 학생들의 작품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교실에서 시작된 고민과 기록들이 또 한 번 전시장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학생들의 시선과 이야기가 담긴 작품들이 궁금하다면 전시장을 찾아 따뜻한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길 바란다.
이효석 선생님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으로 ‘돌’을 주제로 작업한 어린 참여자의 작품을 꼽았다.
돌 하나에서 시작된 상상
전시장 한편에는 돌을 주제로 작업한 어린 참여자의 작품이 놓여 있었다. 아이는 참 돌을 좋아했다.
사물탐험 노트에는 돌의 종류와 특징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고, 직접 그린 스케치와 아이디어들이 페이지마다 이어졌다. 발표 시간에는 수줍어 말로 표현 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충분히 작품을 이해했다. 그리고 작품은 누구보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어른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돌멩이 하나를 붙잡고 질문을 만들고 상상을 확장하는 모습은 오!전시가 보여준 또 하나의 장면이었다. 돌을 좋아하는 아이를 따라 전시장을 찾은 어머니는 처음에는 작품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 아이의 활동을 지켜보며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신청자는 모두 작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안내를 듣고 잠시 고민 끝에 자신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캠핑 의자를 전시장 한가운데 놓았다. 그리고 벽면에는 단 한 글자를 남겼다.
‘멍’
직장에 다니고, 아이를 키우고, 하루를 분주하게 보내는 일상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는 시간. 어쩌면 그 짧은 순간이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휴식이었는지도 모른다. 특별한 재료도 복잡한 설명도 없었다. 하지만 의자 하나와 글자 하나만으로도 그의 일상은 충분히 작품이 되었다.
우리의 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
전시장을 채운 것은 뛰어난 기술이나 화려한 결과물이 아니었다. 각자가 살아온 시간과 기억,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누군가는 의자를 통해 관계를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꽃을 통해 새로운 삶을 이야기했다.
학생들은 칠판을 가져왔고, 아이는 돌을 가져왔다.
평택에는 여전히 시민들이 자유롭게 작품을 발표하고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 학교 밖 전시를 꿈꾸는 교사도, 처음 작품을 만들어 본 시민도, 전시를 이어갈 장소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오!전시에는 사람들이 모였다.
전문 작가가 아닌 시민들이 전시장의 주인이 되었고, 관람객은 작품보다 먼저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전시장을 나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내일도 누군가는 학교 칠판 앞에 앉을 것이고, 누군가는 길가의 돌멩이를 주워 들 것이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사물들이다. 하지만 ‘오!전시’를 보고 난 뒤에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예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풍경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시가 끝난 뒤 남는 질문
오!전시는 시민들이 직접 창작자가 되어보는 드문 경험이었다. 참여자들은 사물을 관찰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전시장 안에서 그것을 작품으로 풀어냈다. 작품보다 사람의 이야기가 먼저 보였고, 결과보다 과정이 오래 남는 전시이며 최근 관람한 것 중 가장 흥미로운 전시이기도 했다. 다만 전시를 둘러보며 한 가지 아쉬움도 남았다. 이렇게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하고, 학교와 지역 예술가가 함께 만들어낸 작업이지만 이를 담아낼 여건과 홍보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 지역의 면적이 크고 교통이 불편하다보니 학교 학생들이 전시를 보기 위해서는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고,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올 수 있는 전시 공간도 많지 않다.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지만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오!전시’는 일반적인 시민 전시가 아니라 평택의 문화예술 환경에 질문을 던지는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시민들이 예술을 경험할 기회는 충분한가. 학생들의 작업은 학교를 넘어 지역사회와 연결되고 있는가. 재단과 학교, 지역 예술가들은 얼마나 자주 만나고 있는가. 전시장을 나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내일도 누군가는 학교 칠판 앞에 앉을 것이고, 누군가는 길가의 돌멩이를 주워 들 것이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사물들이다. 하지만 이 전시를 보고 난 뒤에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예술은 특별한 공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시작된다. 이 프로그램이 남긴 것은 전시장 안의 작품만이 아니다. 평범한 거리와 사물, 그리고 자신의 하루를 조금 더 유심히 바라보게 된 사람들의 시선 역시 이 전시가 만든 결과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