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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지만 따뜻한 공간, 우리들의 아지트

느슨하지만 따뜻한 공간, 우리들의 아지트

Editor | 조약돌
출퇴근길이나, 여가시간을 보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평택역. 화려한 프렌차이즈와 맛있는 먹거리들도 정말 많습니다. 그 틈으로 어떻게 보면 정말 로컬스럽고, 자연스럽게 시간이 쌓이며 동네 사랑방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공간들이 있습니다. 지역의 특색을 가지고 만든 음식과 동네 사람들의 자취가 묻은 멋진 공간들 중 오늘은 ‘그림’, ‘문구’, ‘커피’ 라는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는 취향과 관련한 공간을 소개해보려합니다. 더 재미난 것은 각 공간마다 사람들이 모이는 방법과 형태가 다 다르다는 건데요. 사람냄새가 물씬 나는 이야기와 함께 공간으로 잠시 초대드립니다.

"그거 해서 뭐 할 건데?"라는 질문을 지워낸 책과 그림의 연대 공간 - 취향집

경기 평택시 자유로7번길 5-1 3층
저희 로컬플레이레코드 건물 3층에 위치한 '취향집'은 책과 미술이 어우러진 아늑한 커뮤니티 공간입니다. 이 공간의 시작은 원대한 사업적 포부보다는 내밀한 마음이 닿아있습니다. 평택으로 이주한 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 생활 속에서 고립감을 겪던 공간지기에게 새로운 도전이 그 출발이었습니다.
예술고등학교와 미대를 진학한 그녀는 졸업 후 문든 이런 생각에 빠지게됩니다. ‘그림을 그려서 뭐하지?’
결국 ‘돈이 안 되는 건 다 무가치한 거 아닌가?’ 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갔고, 그 순간 모든 것이 공허해졌습니다. 음악도, 독서도, 여행도 돈이 되지 않는다면 의미 없는 걸까?
그런데 답은 단순했습니다. 그림이 좋아서 그리는것 뿐, 그 자체로 이미 이유가 됩니다.
"(소설 '달과 6펜스'에서)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이곳은 결과에 대한 강박이 없습니다. 돈과 세속적 가치를 상징하는 '6펜스' 대신, 꿈을 상징하는 '달'을 좇는 사람들의 아지트입니다.
"그래서 그걸로 뭐 할 건데?"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지워내자, 그저 캔버스에 색을 칠하고 책을 넘는 일상의 '과정'이 행복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상업적인 이윤을 남기기보다 누구나 부담 없이 모일 수 있도록 독서 모임 참가비를 0원으로 하거나, 드로잉 모임을 재료비 5,000원에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이 다정함에 이끌려, 4개월 동안 일만 하느라 사람과 대화조차 하지 못했던 창업가부터 이제 막 이사 와 친구가 없는 직장인까지 수많은 이방인과 주민들이 모였습니다. 엄청난 성취나 값비싼 작품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취향집은 그림과 책을 매개로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소소한 즐거움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느슨하고 따뜻한 연대의 장입니다.

종이에 글이 입혀지는 순간을 큐레이션하다 - 그롯

평택시 중앙로 60 2층
그롯은 종이를 ‘글이 입는 옷’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된 큐레이션 공간이다. 어떤 글이 담기느냐에 따라 종이의 분위기와 역할이 달라진다는 생각 아래, 다양한 종이 위에서 글을 쓰고 경험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이곳에서 문구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한 도구이며 편지지와 다이어리, 책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글이 머무는 형태들이다. 그롯은 이러한 요소들을 하나로 엮어 ‘종이 위에 글이 입혀지는 경험’을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한다.
공간 한편에는 손님이 직접 종이를 고르고 펜을 들어 글을 써보거나 조용히 머무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종이와 글을 직접 마주하는 시간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공간지기는 과거 편지 모임을 운영하며 사람들이 아날로그적 소통에 깊은 갈증을 느끼고 있음을 확인했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롯을 하나의 문화적 실험으로 확장하고 있다.
현재 그롯은 ‘편지 작가’ 프로젝트를 통해 특정한 목적이나 마감이 아닌 순간의 감정에서 출발한 글이 하나의 작품이자 상품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나아가 편지를 매개로 한 낭독회와 토론회 등, 글을 쓰고 나누는 새로운 방식의 콘텐츠를 기획 중이다.
그롯에게 종이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글이 머무는 방식이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다. 그리고 그 위에 입혀진 글은 각자의 감정과 시간을 담은 하나의 ‘옷’이 된다.

머신을 비워낸 자리에 취향의 대화가 채워지다 - 맵(MAP)커피

경기도 평택시 자유로7번길 14-5 1층
평택역 인근, 다소 거칠고 오래된 구도심 골목. 상권을 철저히 분석하던 평소와 달리, 공간지기가 오직 '직감' 하나만으로 이끌리듯 자리 잡은 곳이 바로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 '맵커피'입니다. 작년 2월에 문을 연 이곳은 커피 본연의 매력에 집중하기 위해 오픈 초기 판매하던 주류를 과감히 덜어냈고, 매출이 반토막 나는 것조차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나아가 카페의 필수품이라 여겨지는 에스프레소 머신마저 치워버리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손님분들이 그냥 오시면... 일단은 그냥 아이스아메리카노만 주세요 이렇게 하시니까... 그냥 없애버리자 해서 머신도 과감하게 없애버렸어요."
선택지가 오직 필터 커피로 좁혀진 자리는, 공간지기와 손님이 나누는 유쾌한 취향의 대화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이제 단골손님들은 바에 앉아 메뉴판을 보는 대신 "사장님이 주고 싶은 걸로 주세요"라며 온전히 취향을 맡깁니다. 그러면 공간지기는 원두의 지역, 가공 방식, 컵 노트가 무엇인지 퀴즈를 내듯 커피를 내어줍니다. 손님들은 커피를 단순한 음료가 아닌 직관적인 감각을 깨우는 즐거운 미식의 놀이로 받아들입니다. 이곳에 들어서면 "식사하셨어요?"라는 이웃집 같은 정겨운 안부가 가장 먼저 건네집니다. 미용 일을 오래 했던 공간지기 특유의 다정함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공간의 문턱을 한없이 낮춥니다.
"옛날에는 진짜 저희 아파트 문 열어놓고 살았거든요. 그냥 저 부모님들이 앞집에 가 있어 막 이러면서 그런 게 있었잖아요. 이런 느낌이 전달되면 좋겠어요."
"오픈했을 때 오셔서 마감할 때까지 앉아 있다도 된다고 해요. 오히려 그냥 즐거워요. 저도 심심하지도 않고 같이 얘기하고..."
타지에서 온 1인 가구 청년들과 동네 주민들은 이 다정한 환대 속에서 오래도록 머뭅니다. 이사를 가거나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받아 평택을 떠나게 된 단골손님들이 떠나기 일주일 전 꼭 매장에 들러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남기고 갈 만큼, 맵커피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효율이나 장사 수완보다는 이처럼 사람 간의 관계 자체를 동력으로 삼는 이 넉넉한 공간은, 다른 스페셜티 카페들과도 단골을 소개하고 커피 정보를 공유하며 평택의 건강한 라이프문화를 견인하는 동네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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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동안 방문한 각 공간들에는 사람들의 흔적과 운영하는 공간지기들의 따뜻한 환대가 가득합니다. 언제든 편하게 공간을 즐기면서 각자의 취향을 나눌 수 있는 장소야 말로 느슨하지만 가장 따뜻한 거점, 아지트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혹시 동네를 연결하는 사랑방에서 만난다면 수줍지만 반갑게 인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