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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샘, 화수분 이야기

마르지 않는 샘, 화수분 이야기

Editor | 조약돌
세상에 ‘처음’만 있는 건 아니다. 매일 아침 새 반죽을 올리는 빵집 주인, 아이들을 맞이하는 선생님, 무대 위에 오르기 전 숨을 고르는 연주자. 그들 모두 어제와 같은 자리에서 오늘을 다시 시작한다. 그 반복 속에 무언가가 쌓이고, 그 무언가가 결국 한 사람의 삶이 된다. 평택 홍원리 한 켠, 한 청년이 스물여덟에 혼자 손으로 지은 작업실이 있다. 그 공간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 이름은 화수분. 마르지 않는 샘이라는 뜻이다.

같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 것들

화수분이 처음 만들어진 건 2011년 무렵이다. 기획을 배우고 싶었던 한 청년 예술가가 지역 문화 현장에 뛰어들면서, 흩어져 있던 동료들을 한데 모으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활동하던 평택 출신 작가들을 다시 불러 모아 소리터 1층에 공용 작업 공간을 열었다. 시민들과 소통하고, 작품을 만들고, 교육하고, 창의적인 일들이 계속 만들어지는 곳. 이름은 2012년에 붙였다. 화수분. 끊임없이 채워지는 것들. 지역에서 예술로 먹고사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안다. 이형범 작가도 그 현실을 몸으로 겪어 왔다. 그래서인지 화수분이 지켜온 것 중 하나는 ‘지역 예술인의 자리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었다.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함께 작업하고 교육하고 서로의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비어가는 시간도 화수분의 일부였다

화수분의 시간이 늘 풍요롭지는 않았다. 거점이 바뀌고, 함께하던 이들이 결혼을 하거나 다른 길을 찾아 자연스럽게 흩어지면서 때때로 공백도 찾아왔다. 이형범 작가는 그 시간을 ‘견뎠다’거나 ‘극복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냥 지나간 것 같아요.” 그 말이 오래 남는다. 버티거나 이겨낸 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낸 것. 어쩌면 그것이 가장 솔직한 지속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침묵의 시간이 끝날 즈음, 화수분의 옛 동료들이 하나씩 물레와 가마 도구를 보내왔다. “선배, 다시 하세요.” 아무 말 없이 작업실 한켠에 놓인 물건들. 그것이 다시 시작의 신호였다.

같은 자리, 새로운 이름

올해 화수분은 이름을 바꿨다. ‘생활문화예술공동체 화수분’에서 ‘문화예술공화국 화수분’으로. 예술가들이 주권을 갖는다는 선언이다. “작품 활동과 함께 시민을 만나는 교육 프로그램도 해봐야죠, 어린이집부터 찾아보려합니다” 2026년 화수분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지도 모르겠다. Hand&Heart를 통해 홍원리에 모인 여러 작가들이 함께하는 화수분은 사유하는 공간이 아니라, 모인 모든 이들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가죽공예를 하는 작가가 함께 하기에 공간이 부족하면, 화수분이 찾아간다. 화수분이 이 공간 안에만 있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 마치 봄의 새싹이 움트는 소리처럼 들렸다. “꼭 이 공간이 아니어도 다른 공간에서도 화수분의 의미와 가치,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가장 가까운 것부터

올해 이형범 작가의 작업은 조금 달라졌다. 옆에 숯가마가 생기면서 숯이라는 재료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도자기랑 너무 흡사한 거예요. 시간과의 싸움이고 시간의 결과물인데, 결과가 숯이냐 도자기냐의 차이일 뿐이고.” 불과 흙, 그리고 시간. 배운 방식은 도예였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재료를 시각화해보겠다는 마음. 친구와 둘이 산에 올라 스케치북만 들고, “우리 원시인이 돼 보자”고 했다는 이야기에서 웃음이 났다. 거창하지 않다. 그냥 지금 여기에 있는 것들로 시작한다. 이메일로 화수분 입주 신청을 받아보면 수원, 인천, 화성에서 오는 분들은 많은데, 정작 평택 분들은 거의 없다고 했다. 가까이 있는 것이 오히려 보이지 않는 역설. 그래서 화수분은 더 오래, 더 가까이 남으려 한다.

봄에 대하여

잡초를 뽑으면 하루가 간다고 했다. 뽑으면서 새로운 생각도 하게 된다고. 문화가 뭐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이 그것이었다. “그냥 뭐 평범한 일상들. 일상.” 소비하지 않아도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자리. 만들어 가는 것 자체가 문화가 되는 공간. 화수분이 오래 버텨온 이유가,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봄은 처음 오는 것이 아니다. 매년 온다. 하지만 매번 새롭다. 화수분도 그렇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같은 자리에서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올봄도 화수분은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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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도스튜디오 팀은 인터뷰를 마치며 이형범 작가에게 첫 봄 인사를 요청했다. 예정되지 않은 질문이기도 했고, 글을 보는 누군가에게 봄 인사를 고민하는 모습에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저녁즈음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갑작스봄이 오듯, 모두의 따뜻한 행복이 스며들기를… 안녕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