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home
평면도 스튜디오
home
✉️

공간을 통해 계절을 나누다

공간을 통해 계절을 나누다

Editor | 조약돌
어떤 공간은 이상하게 오래 기억된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의 공기, 식물 사이로 흘러드는. 빛, 묵직하게 머무는 온도 같은 것들, 그 안에는 늘 사람의 마음이 녹아 있다.
오늘 만나볼 공간기획자는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나만의 계절을 찾게 되는 곳, 그 계절을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함소연 대표다. 함소연 대표는 “공간을 만든다”는 말 대신 “계절을 만든다”는 말을 한다. 봄처럼 따뜻하거나, 가을처럼 고요한  각자의 온도와 리듬을 품은 계절이 곧 공간이 된다고 했다. 함소연 대표의 카페인 우하이에서 시작해 OOS STUDIO로 이어진 길에는 신뢰, 생명, 그리고 사람이라는 단어가 차곡히 쌓여 있다. 공간을 통해 관계가 다시 이어지고, 문화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빛이 천천히 번지는 오후처럼, 마음이 조금 느려지는 이야기. 공간의 계절을 담아낸 그 이야기를 기록으로 전한다.

“공간의 계절을 만든다” -우하이(uhai) 에서 OOS STUDIO

계절의 언어로 공간을 짓다

공간은 그 안에 머무는 사람의 속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함소연 대표는 그 차이를 오랫동안 관찰해왔다. “공간을 만든다기보다 계절을 만든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아요. 봄처럼 따뜻하거나, 가을처럼 고요한 공간이 있잖아요. 그 안의 온도와 리듬을 맞추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공간을 기능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그곳에서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를 더 중요하게 본다.
“좋은 공간은 결국 사람이 자기 속도로 머물 수 있는 곳이에요. 조용히 앉아 쉬어도 괜찮고, 친구들과 대화해도 어색하지 않은 곳. 그게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죠.” 우하이(uhai)는 스와힐리어로 ‘생명’을 뜻한다. 그는 그 이름 안에 사람과 공간이 함께 숨 쉬는 구조를 담았다. 빛이 머무는 방향, 식물이 놓이는 위치, 조명이 닿는 시간대까지 모두 사람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조율한다.
“공간마다 고유한 리듬이 있어요.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맞춰줘야 해요. 그래야 그 안에서 관계가 자연스럽게 생겨나거든요.” 그가 말하는 공간은 누군가에게 소유되는 물리적 장소라기보다, 함께 공유되는 정서에 가깝다. 그래서 그는 공간을 설계할 때마다 ‘이곳에서 어떤 이야기가 태어날까’를 먼저 상상한다.
“공간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가는 문화의 시작점이에요. 하나의 테이블, 한 줄의 빛, 음악 한 곡이 모여서 그 공간만의 문화를 만들어가죠. 저는 그 과정을 설계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렇게 함소연 대표가 만드는 공간은 계절처럼 흘러가며, 생활의 한 장면이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잠시 쉬어가며, 자신에게 맞는 리듬을 찾아간다.

신뢰로 완성되는 현장의 시간

하나의 공간이 완성되기까지는 수많은 사람이 함께 움직인다. 설계자, 기술자, 자재를 옮기는 사람, 그리고 그 공간을 사용할 사람까지. 함소연 대표는 그 과정 전체를 ‘신뢰의 구조’라고 말한다. “결국 공간은 사람이 만드는 거예요. 도면 위의 선이나 재료의 조합보다, 그걸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중요하죠.” 그는 현장을 직접 지킨다. 누구보다 먼저 도착해 벽의 질감을 확인하고, 빛이 어느 방향으로 들어오는지 살피며 하루를 시작한다. 도면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 미세한 감각이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현장은 늘 변수가 많아요. 그런데 그 변수를 믿고 기다려주는 게 신뢰라고 생각해요. 어떤 날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아도, 그 안에서 최선의 조율점을 찾아가는 게 제 역할이죠.” 함소연 대표에게 ‘완성’은 계획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만들어지는 결과에 가깝다. 그래서 그는 작업을 의뢰한 이들과도 가능한 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누군가는 단정하고 깔끔한 걸 원하고, 누군가는 조금은 흐트러진 여유를 좋아하죠. 어떤 게 옳다고 정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머무는 속도를 존중하려고 해요.” 그는 설계가 아니라 ‘이해’를 우선한다. 이해가 쌓여야 신뢰가 생기고, 그 신뢰가 공간을 완성시킨다고 믿는다.
“공간은 결국 사람이 모여서 믿음을 확인하는 과정이에요. 잘 만든 도면보다 중요한 건, 서로를 믿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완성된 공간은 흔적이 남는다. 함께 일한 사람들의 손길, 서로를 존중했던 시간, 그리고 그 신뢰가 만들어낸 공기의 결. 함소연 대표는 그것이 ‘살아 있는 공간’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평택의 자원은 결국 사람

도시를 새롭게 만드는 힘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함소연 대표는 평택에서 일을 하며 그 사실을 자주 느낀다고 했다. “이 지역에는 묵묵하게 자기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분들이 있죠. 저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며 평택의 진짜 자산을 봤어요.” 그는 공간을 설계할 때마다 그 주변의 사람들을 먼저 살핀다. 시장의 상인, 오래된 단골, 함께 일하는 기술자들까지. 각자의 삶과 리듬이 모여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고 믿는다.
“공간이란 결국 관계의 합이에요. 어떤 사람들과 어떤 속도로 이야기를 쌓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죠. 그래서 저는 늘 그 관계의 결을 먼저 읽어요.” 이런 시선은 자연스럽게 ‘참여형 공간’으로 이어졌다. 그는 일방적으로 완성된 공간보다, 사람들이 스스로 참여해 의미를 더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예를 들어 핑크뮬리 축제에서는 ‘거울 설치형 공간’을 기획했다. 풍경을 바라보는 대신, 그 속에 자신이 비치도록 구성한 것이다. “누군가의 얼굴이 풍경 속에 들어가는 순간, 공간은 완성돼요. 그때 비로소 사람은 단순한 관람객이 아니라, 그 풍경의 일부가 되거든요.” 그는 이런 방식이 ‘로컬 문화’를 만드는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공간을 통해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가 드러나고, 그 이야기가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면서 작은 문화가 만들어진다.
“결국 지역의 힘은 연결이에요. 서로 다른 속도와 생각이 만나서 하나의 리듬을 만들 때, 그게 바로 지역문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평택의 골목과 시장, 오래된 건물들 속에서 그는 여전히 그 리듬을 찾아 걷는다. 때로는 그 리듬이 느리게 흘러도 괜찮다고 말한다. “로컬은 속도를 다투는 게 아니라, 함께 시간을 쌓아가는 일이에요. 그 안에서 관계가 생기고, 그 관계가 문화를 남기죠.” 그렇게 함소연 대표에게 로컬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를 이어주는 살아 있는 흐름에 가깝다.

관계를 복원하는 구조로서의 공간

빠르게 변하는 도시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관계를 맺지만, 동시에 더 자주 고립된다. 함소연 대표는 이 시대에 공간이 해야 할 역할을 ‘관계를 복원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요즘은 함께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 시대일수록 공간이 단순한 소비의 장소가 아니라, 서로를 회복시키는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공간을 통해 사람이 다시 사람에게 닿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카페 우하이에서 시작된 그의 실험은 OOS STUDIO로 이어지며 점점 확장되고 있다.
“저는 공간을 통해 지역이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고 싶어요. 단순히 예쁜 인테리어가 아니라, 그 안에서 관계가 생기고 이야기가 오가며, 지역이 스스로 호흡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하는 진짜 문화예요.” 그래서 그의 공간에는 늘 작은 여백이 있다. 누군가가 머물다 가고, 또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는 틈. 그 여백 속에서 관계가 피어나고, 시간이 켜켜이 쌓인다.
“공간이 문화가 되는 순간은 그 안에 ‘온기’가 생길 때예요. 사람의 온도가 닿는 순간, 그 공간은 다시 살아나죠.” 그는 앞으로도 지역의 문화와 생활 속 리듬을 이어주는 공간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공간은 결국 사람을 위한 구조예요. 그 안에서 자유롭게 머물고, 각자의 속도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죠. 저는 그런 자유를 허락하는 공간을 계속 만들고 싶어요.” 함소연 대표가 말하는 미래는 화려하지 않다. 대신 따뜻하고 단단하다. 관계가 다시 이어지는 도시, 그리고 그 중심에 숨 쉬는 공간 하나. 그가 만드는 공간은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천천히 연결하며, 문화가 되어간다.
공간은 결국 사람이 남긴 시간의 흔적이다. 누군가의 손끝, 목소리, 시선이 쌓여 공기의 결을 바꾸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사람이 하루를 시작한다. 함소연 대표가 말한 ‘계절’은 어쩌면 그 시간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봄처럼 다정하고, 여름처럼 뜨겁고, 가을처럼 고요한 마음이 스며든 자리에 우리는 잠시 머문다. 그리고 그 순간, 공간은 하나의 문화가 된다. 누군가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생각을 고르고, 누군가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다시 웃는다. 그 작은 장면들이 모여 도시의 리듬이 되고, 평택의 생활문화가 된다.
공간을 만든다는 일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계절을 놓는 일이다. 서로의 속도를 존중하며, 신뢰로 엮이고, 다시 관계로 이어지는 일. 그래서 좋은 공간은 오래 남는다. 문을 닫고 돌아서도 그 온도가 마음 어딘가에 머무는 것처럼. 함소연 대표가 만들어가는 공간들은 그렇게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의 곁을 따뜻하게 물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