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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관계의 언어다 _ 그리드컨테이너의 시간들

예술은 관계의 언어다 - 그리드컨테이너의 시간들

Editor | 그담

넓은 도시, 느슨한 거리 속에서 예술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글 | 그담 (그리드컨테이너 대표 · 평면도스튜디오 에디터)
평택은 넓고, 도시의 크기에 비해 서로의 거리는 멀다. 예술가들이 흩어져 있고, 모임이 생겼다 사라진다. 이 넓은 도시에서 예술이 ‘닿는 구조’를 만드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드컨테이너는 그런 고민 속에서 시작됐다.
‘Grid’는 격자, ‘Container’는 담는 상자.
서로 다른 예술의 점과 선이 만나 교차점을 이루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이곳에서는 그림을 그리고, 희곡을 읽고, 글을 쓴다. 어떤 날은 배우의 목소리가 울리고, 어떤 날은 펜의 소리와 마음의 대화가 이어진다. 서로 다른 리듬의 예술들이 한 공간에서 만나며 조용하지만 확실한 온도를 만든다.
나는 그리드컨테이너를 단순한 미술 공간이 아니라 예술의 교류를 실험하는 플랫폼으로 만들고 싶었다.
예술가가 서로를 알아보고, 시민이 예술의 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구조. 그 구조가 평택이라는 느슨한 도시 안에서도 작동하길 바란다. 그리드컨테이너의 모임들은 그 시도의 첫 번째 격자들이다. 희곡을 함께 읽고, 마음을 함께 쓰고, 도시를 함께 그리며 생겨난 연결의 기록들. 이 모임들이 모여 평택 예술의 밀도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희곡읽기모임

격주 일요일 오후 3시
|모임 연혁 및 회차 기록|
2월 2일 / 2023 신춘문예 〈식사〉
2월 9일 / 2023 신춘문예 〈은수의 세상〉
2월 16일 / 〈집의 생존자들〉
2월 22일 / 〈두더지 떼〉
3월 2일 / 〈Bae: Before anyone else〉
3월 9일 / 체호프 〈청혼〉
3월 16일 / 체호프 〈갈매기〉
3월 23일 / 체호프 〈갈매기〉
3월 30일 / 〈폭싹 속았수다〉
4월 6일 / 〈절벽 끝에 선 사람들〉
4월 13일 / 〈절벽 끝에 선 사람들〉
4월 20일 / 영화 〈변산〉
4월 27일 / 영화 〈써니〉
5월 4일 / 영화 〈써니〉
5월 11일 / 영화 〈건축학개론〉
5월 18일 / 영화 〈건축학개론〉
6월 8일 / 〈파리의 연인〉
6월 22일 / 〈도넛〉
7월 6일 / 〈덫〉
7월 20일 / 〈나의 해방일지〉
7월 27일 / 〈나의 해방일지〉
8월 10일 / 〈우리 읍내〉
8월 24일 / 〈아름다운 사인〉
9월 14일 / 〈살고 싶어 죽겠어요!〉
10월 5일 / 〈서툰 사람들〉
희곡읽기모임은 대본을 읽는 행위를 통해 타인의 언어를 ‘공감의 언어’로 바꾸는 자리다. 누군가는 배우처럼 몰입하고, 누군가는 관객처럼 웃고 운다. 그리드컨테이너의 일요일 오후는 낭독과 감정이 교차하는 작은 무대가 된다.
나에게 희곡은 비교적 늦게 찾아왔다. 처음 희곡을 접한 것은 예전 살던 지역의 아파트 커뮤니티에서였다. ‘희곡 낭독 모임’이라는 이름이 주는 낯선 호기심에 참여했고, 연기나 영상 편집만 익숙했던 나에게 그 시간은 전혀 다른 종류의 예술 경험이었다.
어색하게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 대사를 읽고, 그 감정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는 일은 출퇴근과 반복된 일상에 지쳐 있던 나에게 하나의 일탈이었다. 그 짧은 몰입의 시간이 마음을 환기시켰다.
그래서 평택으로 내려왔을 때, 그때의 경험을 다시 이어가고 싶었다. 희곡이라는 장르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이 도시에서 다시 만나고 싶었다.
참여자 인터뷰: 권유빈님
Q. 희곡을 ‘낭독한다’는 행위가 개인에게 어떤 감정이나 변화로 다가왔나요?
권유빈: 희곡을 소리 내서 읽으니 그냥 눈으로 읽을 때와는 달리
다른 사람들과 순서를 맞추어야 하니 더욱 집중해야 하고,
감정이 동화되는 느낌이었어요.
Q. 직접 낭독을 하며 느낀 인물과 나 사이의 거리감은 어땠나요?
권유빈: 인물의 상황과 감정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어요.
왜 이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극의 내용에 더 생생하게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Q. 매번 다른 작품을 읽을 때, 분위기나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권유빈: 작품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희극은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힘이 있더라고요.
진지한 작품이어도 유머가 있고, 마지막엔 늘 ‘재밌다, 유익했다’로 끝나요.
Q. 희곡모임이 단순한 독서모임과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느끼시나요?
권유빈: 모두가 비슷한 비중으로 이야기하고 감정선이 함께 흐르니
훨씬 가까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Q. 그리드컨테이너라는 공간이 희곡 읽기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권유빈: 아늑하고 몰입이 잘 돼요.
늘 좋은 분들과 함께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아요.

마음읽기모임

평일 저녁 7시
|모임 연혁|
2024년 1월 시작, 매주 1회 비정기 진행
필사 중심 소모임 → 공감카드 토론 방식으로 확장
주요 활동: 글귀 필사, 감정 나누기, 키워드 리플렉션
짧은 문장을 베껴 쓰며 마음을 비추는 시간.
하루를 마친 저녁, 펜의 움직임이 대화가 되고, 다른 사람의 문장이 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리드컨테이너의 저녁은 그렇게 조용히 이어진다.
그리드컨테이너가 위치한 동삭동은 예전의 농촌 마을이 아니라, 배 과수원을 개발해 조성된 지제영신지구다. 지제동, 세교동, 동삭동이 맞닿은 이 새로운 도시에는 평택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이곳에서 대화로 이어지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저녁 8시, 산책길에 들러 따스한 차 한 잔과 함께 이웃과 일상을 나누는 시간. 신도시에서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사람 냄새 나는 풍경을 그리드컨테이너 안에서 만들고 싶었다. 그리드컨테이너의 마음읽기 모임은 그런 바람에서 시작된 소박한 대화의 실험실이었다. 점점 늘어나는 에디터의 강의 일정으로 여름 동안 운영을 잠시 쉬게 되었지만, 지금까지의 모임 중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기도 했다.
참여자 인터뷰: 오지영님
Q. 함께 필사하는 행위가 혼자 읽을 때와 어떻게 달랐나요?
오지영: 혼자 할 때는 단발성으로 끝났지만, 모임을 통해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어요.
Q. 어떤 문장이 가장 기억에 남았나요?
오지영: 매주 같은 시간에 만나 세상 이야기와 고민을 나누는 그 순간이 소중했어요.
Q. 공감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오지영: 공감카드를 나누며 같은 주제에서 다른 답이 나올 때, 혹은 같은 생각이 겹칠 때요.
Q. 모임이 일상에 준 변화는요?
오지영: 자존감이 높아졌고, 스스로를 더 신뢰하게 됐어요.
Q. 공간이 주는 감정은?
오지영: 늘 힐링이에요. 마음으로도, 그림으로도 치유가 되는 곳이에요.

어반스케쳐스 평택

매달 둘째 주 토요일 오전 10시
|모임 연혁|
2025년 초 자발적 결성
2025년 정기 활동 (매달 1회)
4월 / 배다리생태공원
5월 / 내리문화공원
6월 / 통복시장
7월 / 비전도서관과 거리
8월 / 함박산중앙공원
9월 / 배다리생태공원, 평택호
10월 / 소풍정원
도시를 걷고, 관찰하고, 그리는 사람들.
어반스케쳐스 평택은 그리드컨테이너와는 별도로 에디터가 운영하는 비영리 시민 예술모임이다.
평택 어반, 2025 경주어반스케치 페스타 참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스케치 행사인 경주 어반페스타
“We show the world, one drawing at a time.”
— 세상을 한 장의 그림으로 보여주는 이들의 슬로건은
평택의 거리에서도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미국 시애틀에서 한 일러스트레이터의 개인 블로그로 시작된 이 자발적 예술운동은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SNS의 발달과 함께 ‘도시를 그리는 시민들’이 생겨났고, 이제는 뉴욕, 도쿄, 서울, 부산 등 수백 개 도시에서 매달 한 번씩 같은 하늘 아래에서 스케치북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
어반스케쳐스는 화려한 예술보다 관찰과 기록의 진정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멋진 그림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지금, 이곳’을 느끼며 자신의 시선으로 남기는 일이 핵심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 자발적 모임은 이제 전국 각지에 존재한다. 전문 화가보다 ‘그림을 좋아하는 평범한 시민들’이 더 많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그림의 완성보다 관찰과 기록의 즐거움에 중심을 둔다.
한국의 어반스케쳐스들은 도시의 재개발 지역, 오래된 시장, 골목길, 강변, 학교 운동장 등 ‘사라져 가는 풍경’을 기록하는 데서 공통의 의미를 찾는다. 이는 단순한 취미활동이 아니라, 도시의 기억을 보존하는 예술적 시민활동으로 확장되고 있다. 평택에서도 어반스케쳐스는 도시의 성장과 변화 속에서 ‘기록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새 건물 뒤에 남은 오래된 담벼락,
시장 상인의 표정, 버스정류장의 사람들 —
이들의 그림 속에는 도시의 감정과 시간이 스며 있다.
어반스케쳐스 평택 첫 전시가 11월 2일부터 28일까지 배다리도서관에서 열린다. 시민들이 도시 곳곳을 직접 걷고 그리며 담아낸 풍경과 일상의 기록으로 평택의 다채로운 순간들을 전시한다.
참여자 인터뷰: 황정애님
Q. 어반스케치를 통해 평택이라는 도시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 점이 있나요?
황정애: 평택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기회가 좋았어요. 새 건물과 오래된 구옥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Q. 현장에서 사람들과의 시선 교환은요?
황정애: 시민들이 다가와 “어반스케치 하세요?”라 물을 때, 그 한마디가 큰 격려가 돼요.
Q. 함께 그리는 즐거움은 어떤가요?
황정애: 혼자라면 지루했겠지만, 함께하니 힘도 나고 용기도 생겨요.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서 좋아요.
Q. 도시 속에서 남기고 싶은 풍경은요?
황정애: 사람들의 모습이에요. 밭일하는 농부, 식당 아주머니, 오래된 노포의 아저씨 같은 평택의 얼굴들요.

평택에서 예술모임이 갖는 의미

글 | 여문환
평택은 늘 ‘변화의 도시’였습니다. 예전에는 삼남대로가 지나던 교통의 중심지였고, 산업화 이후에는 미군기지와 항만, 산업단지가 생기면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평택에는 농촌과 도시, 전통과 현대, 오래 산 사람과 새로 온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모습이 평택 예술의 바탕이 됩니다.
예술은 늘 경계에서 자랍니다. 익숙한 일상이 흔들릴 때, 낯선 생각이 스며들 때 새로운 표현이 나옵니다. 평택의 예술모임들은 바로 이런 자리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림으로, 어떤 사람은 연극이나 글쓰기, 마음 나누기 같은 방식으로 평택의 얼굴을 담아왔습니다.
그들의 활동은 단지 작품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변해가는 도시의 감정을 기록하고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예술모임이 지역과 만나는 순간에는 특별한 힘이 있습니다. 예술가들이 주민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단순한 예술활동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전시나 공연이 끝나더라도 그 경험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빠르게 변하는 도시 속에서도 서로의 마음을 이어줍니다.
지역 예술이 오래가려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공간, 사람, 그리고 기록.
공간은 단순히 작업실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나고 생각이 쌓이는 곳입니다. 사람은 그 공간을 살아 있게 만드는 존재이고, 기록은 그 만남을 잊지 않게 지켜주는 기억의 도구입니다. 이 세 가지가 함께할 때 평택의 예술은 진짜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요즘 평택에는 ‘그리드컨테이너’ 같은 복합문화공간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그림, 희곡, 독서, 마음 나누기 같은 다양한 활동이 함께 이루어집니다. 이런 공간은 단순한 작업장이 아니라 생각을 나누는 실험실과 같습니다. 서로 다른 세대와 장르가 만나며, 예술은 더 넓고 따뜻한 언어로 자라납니다. 앞으로 평택의 예술모임이 만들어갈 미래는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일상 속 작은 경험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한 장의 그림, 한 편의 시, 한 번의 낭독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평택의 정체성을 새롭게 만들어갈 것입니다. 예술이 세상을 직접 바꾸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게 합니다. 그 시선의 변화야말로 변화가 많은 평택에서 가장 오래 남을 예술의 힘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