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풍경을 불러내며 걷는 한광중고 골목
Editor | 그담
함께 걸어낸 시간의 골목 이야기
지도 위에서 다시 걷는 길
네이버 지도를 펼치고 한광중·고 사거리에서 성동초교까지 선을 그린다. 화면에는 카페와 학원, 체인 음식점의 핀이 반짝이지만,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떠오르는 풍경은 다른 시간대에 있다. 졸업한 지 오래지만, 이 골목은 여전히 우리의 안쪽 어딘가에서 숨 쉬고 있었다.
아침마다 덕동산 지름길을 넘어 이 담벼락을 따라 걸었다. 종소리와 분식 냄새, 여름의 뜨거운 공기까지—그때의 색과 온도가 지도를 통과해 되살아난다.
나는 덕동산을 통한 지름길로 등교하곤 했다. 길다란 이 담벼락을 이른 아침에도 늦은 저녁에도 늘 친구들과 걸었다.
평택시 비전동에 속하는 성동초등학교-비전도서관-한광중고 골목길은 평택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한번은, 아니 여러번 올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당시 가장 번화가인 평택역으로 가는 길목이면서 유일한 도서관이 었던 비전도서관, 그리고 함께 발달한 상권들과 큰 학교들 덕분에 늘 학생들로 바글바글한 골목이었다.
한광중고 건너편 상가 건물, 이전에는 음반 가게, 슈퍼, 독서실이 있었다. 에디터가 늦은 나이에 교생을 나갔을 때 훨씬 어린 후배 동기들이 신전떡볶이가 추억의 음식이라고 해서 놀랐었다.
이제는 어엿한 직장인이 된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함께 걸으며 지도를 짚었다.
“여기, 만화방 있었잖아. 학교 끝나면 늘 갔었는데 기억나?”
“맞아, 이 자리는 닭꼬치집이었지. 방과 후엔 늘 사람들로 북적였어.”
지도 위 좌표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키며, 사라진 풍경을 되살려 주었다.
쓰레드에서 다시 살아난 골목
며칠 전, 오랜만에 쓰레드에 올린 한 문장이 작은 아카이브가 되었다.
“한광중고·성동초 골목길, 무엇이 떠오르세요?”
닭꼬치집, 문방구, 짱가네, 봉구스버거… 댓글이 붙을 때마다 사라진 간판들이 차례로 불을 밝혔다.
특히 놀라웠던 건 옛 가게 주인의 자녀들이 남긴 댓글이었다.
“우리 부모님이 그 가게 하셨어요.”
짧은 한 줄이었지만, 사라진 간판 대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 가게는 여전히 문을 열고 있는 듯했다.
쓰레드에 남긴 단 한 마디 질문이, 오랜만에 낯선 사람들과 어린 시절의 골목을 나누는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주었다.
사라진 골목의 풍경
매우 더웠던 일요일 아침 쓰레드의 조각과 친구의 기억을 조합해서 골목을 걷기로 했다.
기억이 안난다던 친구는 지도에 연신 형광펜을 표시하고 새 종이에 옮겨적는 등 가게 이름과 위치를 적어나갔다.
무더운 일요일, 우리는 쓰레드의 조각난 기억과 친구의 지도를 들고 거리를 걸었다. 만화방, 문방구, 음반가게, 짱가네 분식, 재홍분식, ‘아포칼립시스’로 기억하는 가게(또띠아 가게).
지금은 카페와 밝은 조명이 그 자리를 채웠지만,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기름 냄새와 웅성거림이 되살아났다.
그 시절 이곳은 분명 ‘먹는 골목’이었다. 빛 바랜 간판들이 학생들의 하루를 견고하게 지탱하던,
저렴하고 확실한 위로의 풍경들.
그 시절 골목은 분명 ‘먹는 골목’이었다.
빛이 바랜 간판이지만 그 세월만큼 학생들의 하루를 든든하게 채워주던 소박한 맛의 풍경들이 골목을 지배하고 있었다.
모두의 기억에서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는 아포칼립시스라는 또띠아 가게로 추청되는 위치.
나의 골목, 비전도서관(구 평택시립도서관)의 시간
하지만 내 기억은 조금 달랐다. 전학 와서 어색하고 낯설던 시절, 나는 이 골목 끝 비전도서관으로 자주 발걸음을 옮겼다. 서가에 빼곡히 꽂힌 한국 소설들을 하나하나 빌려 읽으며, 그 곳에서야 비로소 내가 자리를 찾는 기분이 들었다. 넷플릭스가 없던 시절 이야기에 빠진 나는 도서관의 낡은 의자에 앉아 책장을 넘겼다. 주로 본 장르는 한국 장편 소설들. 특히 토지를 가장 좋아했다. 그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 듯했다.
오랜만에 찾은 도서관은 깨끗이 리모델링되어 있었다. 카페처럼 바뀐 1층, 강의실이 된 지하, 칸막이가 사라진 열람실, 그리고 ‘독서 피크닉 바구니’와 작은 체험 코너들. 서가의 배열은 달라졌지만, 책장 사이로 흐르는 정적과 집중의 시간은 여전했다.
리모델링으로 카페처럼 바뀐 1층 로비
지하에 매점에서 도시락을 먹었던 기억이 있어 내려가보았는데 강의실로 변경되었다.
고등학교 시절과 재수시절 매일 상주했던 열람실은 칸막이가 사라졌다.
낡은 책장 대신 세련된 책장과 깨끗한 정돈이 낯설다.
도서관의 변화들
책과 보드게임, 돗자리 세트가 담긴 독서 피크닉바구니를 대여중이다.
무심코 예술 한 조각이라는 체험 코너, 퍼즐을 맞추고 응모하면 집으로 퍼즐 한 조각을 보내준다고 한다.
도서관에서 시작된 무대
평택시립도서관(비전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리는 공간이 아니었다. 도서관 옆에는 작은 어린이 공원이 있는데 각 학교 연인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교류의 장이었다. 도서관은 우리에게 카페이자 공원이자 커뮤니티였다.
― 도서관 동아리에서 시작된 배우의 꿈
인근 다른 고등학교에 다니던 한 학생은 이곳 독서 모임에 참여했다가 우연히 도서관 공연 무대에 섰다고 한다. 그 순간의 떨림과 환희를 잊지 못해 결국 배우라는 길을 걷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도서관이 품고 있는 힘을 잘 보여준다.
“특별한 꿈이 없던 제가 우연히 도서관 공연 무대에 올랐어요. 그날 이후로 인생이 달라졌죠.”
배우 김민수 씨 역시 중학교 시절 처음 이곳의 독서 동아리에 참여했다.
누군가에게는 잠시 머무는 공간이었을지 몰라도, 그에게 도서관은 꿈의 무대였다.
동아리는 고등학교까지 이어졌고, 그는 그 첫 떨림을 잊지 못해 결국 배우의 길을 택했다.
도서관은 누군가에게 카페였고,
누군가에게 공원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무대를 열어준 문이었다.
골목에서 이어진 이름들
쓰레드에 가장 자세한 기억을 남긴 정빛난님과의 만남
이 기사를 시작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일은 의외로 온라인 골목 만남이었다.
지도를 보며 떠올리지 못하는 나의 몹쓸 기억력을 탓하며 쓰레드에 오랜만에 게시글을 올렸는데 사람들이 댓글을 실시간으로 달아주기 시작했다.
따스한 댓글들은 마치 다음 카페나 아이러브스쿨을 쓰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지도에 빼곡하게 적으며 설명하는 그녀의 눈빛은 청소년 시절처럼 반짝거렸다.
지도는 기억을 불러내는 걸까?
쓰레드에서 가장 자세한 지도를 그려준 정빛난 씨는 성동초에서 한광여중·고를 지나 평택 시내로 이어지는 동선을 마치 어제의 일처럼 풀어냈다.
분식집 가족의 이야기, 문구점 사장 가족과의 인연, 학생들만 아는 작은 교류의 장소들. 그리고 비커에 바나나 스무디를 가득 담아 주던 카페 ‘아르마니’.
수다의 양만큼 푹신하던 의자까지 또렷이 기억해냈다.
오륜체육사 앞에는 작은 문구점이 있었는데, 사장님은 길가에 자동차 트랙을 깔아두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게 했다. 지금은 휴대폰 가게의 유리문이 자리하고 있지만, 그녀의 말 속에서는 여전히 그 웃음소리가 되살아났다.빛난 씨는 문구점·만화방·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른 진로를 찾았다.
“어릴 때부터 사람이 좋았어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 같아요.”
그 경험들은 결국 그녀가 살아갈 방향을 비추는 등불이 되었다.
변화 속에서도 이어지는 기억
지금 지도 위의 골목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사라진 가게들 대신 새로운 간판이 들어섰고, 분식집 대신 카페 음악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우리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떡볶이 냄새와 책장 넘기는 소리가 동시에 울리고 있다.
“먹는 골목이었는데, 결국은 골목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네.”
친구의 말처럼, 지도에 찍힌 점 하나하나는 단순한 장소가 아닌 우리의 성장 기록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또 다른 세대가 그 길 위에서 추억을 쌓고 있다.
골목은 사라지고 바뀌지만, 사람들의 입에서, 쓰레드의 댓글 속에서,
그리고 도서관의 책장 사이에서 여전히 살아남는다.
자녀의 등굣길을 떠올리며 황정애 님이 그린 거리 풍경에는,
한광중·고를 다녔던 세대들의 발자취가 겹쳐져 있다.
골목은 그렇게 또 다른 세대의 추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마무리하며
지도 위 좌표는 바뀌어도, 우리가 남긴 발자국과 호흡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분식집의 매운 냄새와 책장 넘기는 소리가 겹치던 시간, 그 시간은 새로운 세대의 걸음과 댓글, 그리고 다시 열리는 도서관의 문 속에서 이어진다.
그 동안 키가 더 자란 성동초등학교 정문 앞 은행나무
평택 성동초등학교의 담벼락은 그대로지만 학교는 공사중이다.
20년 전에 에디터가 대부분의 학창시절을 보냈던 미술학원이 그대로 있다.
골목의 가게들은 문을 닫았지만, 그 골목에서 배운 방식으로 우리는 아직 서로의 하루를 여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