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그대로 맞이하는 곳
Editor | 조약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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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파도 위를 걷다
인력과 척력 사이 삶을 밀고 당기는 시장의 흐름
뜨거운 여름날 시장 안을 가득 채운 소리와 움직임은 마치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스며들기를 반복한다. 누군가는 고기 굽는 냄새에 발걸음을 멈추고 다른 이는 선풍기 바람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땀이 흐르고 웃음도 흐른다. 장바구니는 무겁고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지는 곳. 이곳엔 사람을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인력과 척력 같은 시장의 리듬이 흐른다. 그것은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살아 있는 여름의 파도였다.
요즘 여름은 확실히 예전보다 더 덥다.
여름은 더 이상 계절이 아닌 생존의 감각이다
2025년 7월 평택의 낮 기온은 연일 33도를 넘긴다. 기상청은 평년보다 빠른 폭염이라며 주의를 당부하고 있지만 사실 요즘 사람들에겐 에어컨 없는 여름이 더 낯설고 이상한 일이다.
언제부터인지 여름은 '참는 계절'이 아니라 '피해야 할 계절'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에어컨이 없던 그 시절 사람들은 어떻게 여름을 견디고 있었을까. 그런 물음 하나로 마이크 하나를 들고 통복시장에 다녀왔다.
소리가 살아 있는 공간 시장이라는 풍경
통복시장은 평택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전통시장이다.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머금은 곳이지만 여전히 생생하다. 10시를 넘기자 시장은 금세 북적이기 시작했다. 중간쯤부터는 녹음 장비마저 주변 소리에 파묻힐 만큼 활기차다.
고기 굽는 소리는 철판 위로 퍼지는 열기와 함께 지글지글 불꽃처럼 튄다. 떡갈비를 부치는 소리는 두툼한 고기가 불판 위에서 지글거리며 갈색 윤기를 만들어내는 묵직한 울림이다. 더위 속 바람은 미세한 파열음을 남기고 피부까지는 닿지 않는다. 그 모든 소리를 타고 느긋하게 흘러나오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낮은 음의 합창처럼 공간을 채운다. “이거는 얼마예요?” “코옹나아무울~” 마이크는 사람들의 각자의 삶을 담아내기에 바쁘고 나는 그 사이를 조심스레 걷고 있다.
냉기가 사라진 자리 생활의 기술이 피어난다
시장 안에는 에어컨이 없다. 그러나 냉기가 없지는 않다. 가게 한쪽에는 오래된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고 시장 위에는 냉기가 흘러내려오고 있는 서큘레이터가 있다. 간혹 느껴지는 냉장고의 서늘한 기운이 옆을 스치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짜릿한 소름이 느껴진다. 그만큼 시장 안의 공기는 후끈했다.
녹음된 소리 속에서도 냉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방식이 들린다. 작은 선풍기 바람이 부딪히는 소리 얼음을 부수는 소리 그리고 아이스크림 포장을 여는 비닐 소리. 모든 게 크고 빠르고 시끄러운 대형마트와는 다른 손끝에서 조심스레 만들어지는 여름의 소리다.
더위보다 더 뜨거운 건 그들의 멈추지 않는 리듬이다
하지만 30분쯤 지나자 숨이 턱턱 막히고 마이크를 잡은 손에도 금세 땀이 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더위에 모두 익숙한 느낌이다. 아마 그들은 그 더위 이상의 뜨거움을 감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더위에도 쉬지 않고 손을 움직이는 사람들. 어묵을 튀기고 반찬을 담고 나물을 정리하면서 손님과 웃음으로 흥정을 이어가는 그 리듬.
시장 사람들은 더위를 참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내고 있었다. 그 움직임엔 계절을 초월한 일상의 꾸준함이 묻어났다. 봄이든 여름이든 찬바람이 불든 말든 그들은 매일 그 자리에서 한결같은 리듬을 지키고 있었다.
이곳은 장터이자 일상의 무대 그리고 느슨한 연대의 장소
시장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을 넘어서 평택 시민들의 하루가 교차하고 감각이 공유되는 생활문화의 장이다. 가게 한쪽에 걸린 물수건 선풍기 바람에 살짝 날리는 전단지 아이스크림 하나를 둘러싼 대화 속에는 여름을 견디는 로컬의 지혜가 배어 있다.
살아 있는 문화가 상인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단골이었던 손님이 그림 체험에 아이를 데리고 오고 낯선 이가 ‘정 보따리’ 프로그램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하며 인사한다. 가게는 물건을 파는 곳을 넘어 이야기를 건네는 장소가 되었고 시장 안에서 상인은 단지 판매자가 아니라 생활문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청년숲 문화장터’, ‘정 보따리 풀다’ 같은 프로그램은 상인과 시민의 거리를 좁히고 가게 자체가 무대가 되는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낸다. 이 작은 연결은 곧 단골을 만들고 상인의 마음의 온도를 더해주기도 한다.
통복시장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음식 소리 그림 놀이가 얽히며 시장의 일상에 작은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어느 가게 앞에서는 "저번 미팅은 어땠어?" 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그 옆에서는 "누구 아들은 이번에 어디 대학 갔다더라" 하는 대화가 오간다. 대단한 사연도, 특별한 공연도 아니지만 이런 대화가 오가는 풍경이야말로 시장을 버티게 하는 문화일지 모른다. 문화는 활동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지고 나눠지는 과정으로 스며든다.
에어컨이 없다는 건 불편함 이전에 감각의 복귀일지도 모른다. 시장은 여름의 열정을 선물해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시원함은 바람에서 오는 게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거리감 없는 대화에서 출발한다. 송골송골 맺혀가는 땀방울을 식혀주는 이 바람은 낮이고 밤이고 사람이 머무는 시장통에서 은근하게 퍼져 나온다.
소리와 말 그 모두가 시간을 건너 생활이 된다
무언가를 사는 소리 굽는 소리 흥정하는 소리. 그것들은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이 도시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마이크로 채집한 소리들은 비언어적인 생활문화의 기록이자, 이 평범한 하루가 평택의 문화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여름은 여전히 덥다. 아마 더 더워질지도 모르겠다. 그럼 시장도 더 덥겠지. 하지만 그 더위 사이에 숨어 있는 작은 냉기들 그리고 그보다도 더 깊고 따뜻한 마음들을 느끼다 보면 우리는 에어컨 없이도 시원해지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시장은 더위를 함께 나누며 무너지지 않는 리듬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감각하게한다. 그리고 그 하루를 채운 소리들은 이 도시의 여름이 어떻게 살아 숨 쉬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들려주고 있다.


